• “ 2027 서울 세계 청년대회 일정 : 2027. 8. 3 ~ 8. 8. "

성물방 소식지

게시글 보기
제1109호 - 연중 제22주일 / 26-8-30
입력일 : 2026.09.04 18:24:44
작성자 : 성물방 File : 26-8-05.jpg 조회 : 76
제1109호 · 연중 제22주일
2026년 8월 30일 일요일 성물방 주간 소식지입니다.


최근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태풍과 폭우, 홍수로
삶의 터전을 잃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힘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이번 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나만의 평안과 안위에 머무르지 않고,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는 삶이기도 합니다.

재난으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작은 정성이라도 기꺼이 나누는 것이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의 십자가일 것입니다.

이번 한 주도
자신의 편안함만을 구하기보다 어려움에 놓인 이웃을 돌아보며,
기도와 나눔으로 주님의 뒤를 충실히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재난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금주의 말씀묵상]
======================================================================

2026년 8월 30일 (일) [녹] 연중 제22주일

제1독서 예레 20,7-9 / 제2독서 로마 12,1-2 / 복음 마태 16,21-27

“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려야 한다. ”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아주 힘든 고백을 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환영이 아닌 조롱과 모욕이었습니다.”(예레 20,7-8 참조) 그는 이제 더 이상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침묵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9)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대로 오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길과 주님이 이끄시는 길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신앙은 단지 “하느님을 믿는다”는 말에 머물지 않습니다. 참 신앙은 “내 생각보다 하느님의 생각을 선택할 수 있는가?”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예언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받은 말씀을 시대 앞에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언제나 환영하지는 않습니다. 신앙인은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말인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뒤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말합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6,22) 인간적으로 보면 이처럼 아름다운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놀라울 정도로 강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마태 16,23) 베드로는 고난받는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메시아,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3)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합니다. 베드로의 인간적인 애정이 하느님의 뜻보다 앞선 것입니다. 이 지점이 한국교회가 넘어야 할 커다란 현실적인 유혹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호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사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한 교훈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고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자녀가 가야 할 길을 대신 정해 주기도 합니다. 자녀 역시 부모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원하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정말 하느님의 뜻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기 생각을 교회의 뜻처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주님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여라.”(마태 16,23 참조)

제2독서에서 바오로는 아주 정확한 해답을 줍니다.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여기에서 핵심 단어는 분별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감정적인 열심만이 아닌,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는 지혜를 요구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필로칼리아」(사막 교부들의 내적 고요 생활 발췌 글)의 ‘마음지킴(깨어있음)’이 우리를 도와줍니다. 마음에는 끊임없이 생각이 들어옵니다. 문제는 그 생각에 동의해 버리는 것입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과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릅니다. 분노와 욕심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와 내가 하나가 되거나, 욕심을 하느님의 뜻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의 자유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마음지킴은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세상의 생각이 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그 생각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음지킴입니다. 결국 십자가는 ‘내 뜻을 내려놓는 자리’입니다. 내 뜻을 하느님의 뜻 안에 봉헌하는 것입니다. “주님, 이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듣게 해주십시오. 마음을 고요하게 해주세요.” 그때 조금씩 알게 됩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은 때로 어려워도 사람을 사랑하고, 진실하며, 겸손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곽승룡 비오 신부(대전교구 태안본당 주임), 가톨릭신문

======================================================================
[한주간 전례]
======================================================================

【월요일】 2026년 8월 31일 월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

[복음묵상]

루카 4,16-30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고향인 나자렛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군중은 처음에는 그분을 좋게 말하였지만, 곧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분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과 함께,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은총이 주어졌던 일을 말씀하시자(루카 4,24&#8211;27 참조) 이내 화를 내며 폭력적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들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고,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입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해하고 거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복음 말씀에서 ‘이 말씀은 나랑 맞지 않아.’, ‘이 말씀은 나와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며,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 듣고는 합니다. 하느님 말씀이 늘 달콤하고 편안하면 좋겠지만 그분께서는 우리 삶의 변화를 요구하기에, 때로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기가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은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신]”(4,30) 예수님처럼, 우리를 붙잡고 방해하는 여러 가지 유혹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줄 것입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우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읽는 데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힘들더라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끈기 있게 실천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유청 안셀모 신부)


【화요일】 2026년 9월 1일 화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

[복음묵상]

루카 4,31-37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몹시 놀라서 이야기합니다.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루카 4,36) 예수님의 말씀이 지닌 권위와 힘은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기도 하고, 아픈 이들을 고쳐 주기도 하며, 마귀들을 쫓아내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고 목격하는 것은 참으로 큰 은총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시대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할수록 그 말씀을 듣는 은총의 기회를 더 자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하느님께서 뚜렷한 응답을 해 주시지 않아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 바라는 것이 있을 때에는 적극적으로 열심히 기도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데에는 소홀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 읽기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매우 훌륭하고 중요한 기회입니다. 말씀이 지닌 권위와 힘은 그것을 읽고 마음에 새기는 사람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그 삶을 변화시키고, 힘든 마음에 위로를 줄 것입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


【수요일】 2026년 9월 2일 수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

[복음묵상]

루카 4,38-44
<나는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뜻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현실에서 이 말을 실천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문제는 죄와 사람을 따로 생각하지 않으면 회개 자체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회개하여 변화한다.’라는 말은 사람이 죄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어제와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시는 모습은 그 사람과 더러운 영을 떨어뜨리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죄와 떨어져 다시는 같은 죄를 마주하지 않게 회개하고 변화하도록 이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죄와 떼어 놓으시려고 애쓰십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그렇게 애쓰기를 바라십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거나 죄 때문에 사람 사이의 사랑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시며,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제물로 바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총에 힘입어 죄에서 멀어지도록 노력할 힘과 기회를 얻습니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다른 이들도 그렇게 되도록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는 먼저 죄의 자리를 걷어 버리고, 그 자리에 성찰과 용서가 자리 잡을 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


【목요일】 2026년 9월 3일 목요일 [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 무렵 로마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비롯한 고등 교육을 받고 로마의 고위 공직을 지냈지만, 수도 생활을 시작하여 부제로 서품되고,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교황 사절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590년 교황으로 뽑힌 성인은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도 그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뿐 아니라 신앙과 도덕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기고, 604년에 세상을 떠났다.

[복음묵상]

루카 5,1-11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어부였던 이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시몬 베드로와 어부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시던 그날도 여느 때처럼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는 일에서는 전문가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부도 아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시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자 배가 가라앉을 만큼 많은 물고기가 잡혀 올라옵니다. 베드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라고 말씀드립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주님’이심을 알아 뵙고 의심을 품었던 잘못을 뉘우치며 그런 자신이 예수님 곁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5,10)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데에는 전문 지식이나 냉철한 사고 능력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응답하는 삶을 바라십니다. 수많은 전문가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떠한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을지 깊이 성찰해 보았으면 합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


【금요일】 2026년 9월 4일 금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금요일
----------------------------------------------------------------------

[복음묵상]

루카 5,33-39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오늘 복음의 도입부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루카 5,33).

자신들은 그토록 열심히 단식하며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자주 단식하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5,34-35).

예수님의 이 말씀이야말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금육과 단식의 정신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희생되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그 수난과 죽음이 가져다준 구원에 감사하기 위해 오늘날에도 금육과 단식을 합니다. 그러기에 금육과 단식은 무엇을 먹었고 먹지 않았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적어도 교회가 정한 그날만큼이라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생각하며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시간을 가졌는지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신앙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이 진정으로 바라는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실천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


【토요일】 2026년 9월 5일 토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

[복음묵상]

루카 6,1-5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오늘 복음에서는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며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제자들을 향하여 바리사이들이 항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안식일 규정을 내세워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안식일의 근본정신은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데 열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보다는 규정을 강조하며 이 정신을 왜곡하였습니다.

성경의 전통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안식일 규정을 말씀하신 까닭은, 안식일 하루만이라도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지내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맡기신 이 세상 안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올바른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께서 얼마나 큰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지, 또 얼마나 큰 자비로 세상을 돌보시는지 깨닫고자 진심으로 노력하는 하루를 보내기 바라시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안식일 대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주일에 드리는 미사는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봉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의무이기에 참례하기보다 하느님께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참례합시다. 그렇게 미사를 드릴 때 그 미사는 기쁨과 찬미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

======================================================================
[생활과 함께하는 교리]
======================================================================

기도문에 왜 ‘펠리컨’이?
새끼 살린 어미새의 희생, 예수 수난과 성체성혈 상징

“사랑 깊은 펠리칸(컨), 주 예수님. 더러운 저를 주님의 피로 씻어 주소서.”

성시간에 열심히 참여하신 분이시라면 이 기도문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가(Adoro te devote)’의 한 구절입니다. 주요 기도문들을 보면 동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요. 도대체 펠리컨이 얼마나 중요하기에 기도문에, 그것도 예수님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등장하는 걸까요?

펠리컨은 우리말로 사다새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긴 부리 아래 주머니가 있는 모습이 특징인 새입니다. 주위에서 보는 새는 아니지만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다 보니 사다새가 친숙하게 느껴지는데요. 사실 구약시대까지 사다새는 그렇게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니었습니다.

우선 구약의 율법에서 사다새는 먹을 수 없는 정결하지 못한 동물로 분류됩니다.(레위 11:18, 신명 14:17) 그리고 스바니야서에서는 “사다새와 부엉이도 니네베 기둥 꼭대기에서 지내리라”(2,14)라며 폐허가 된 니네베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언급됐습니다. 사다새 자체가 나쁜 새라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예수님을 상징할 법한 동물은 아니었지요.

그런데 그런 사다새의 이미지를 바꿀만한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새끼를 살리는 어미 사다새의 이야기인데요. 새끼들이 부모 사다새의 얼굴을 쪼면 부모는 그 새끼들을 죽인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미 사다새는 사흘 동안 새끼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자신의 옆구리를 쪼아 피를 흘려, 그 피로 새끼들을 다시 살려낸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실제 사다새의 생태와는 다릅니다. 언제부터 전해졌는지 알 수 없는 이 이야기는 3~4세기경에 작성된 그리스도교 문헌인 「피지올로구스」에 등장하는데요. 이 책에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하느님께 지은 죄와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설명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시편 주해」에서 사다새 이야기가 “사실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고 신중하게 언급하면서도 “사실이라면 당신의 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그분께 얼마나 잘 들어맞는지 보라”고 예수님을 떠올리도록 초대했습니다. 사다새 이야기는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예수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우화로써 사용된 것입니다.

이 우화는 많은 신자들에게 감명을 줬고, 특히 중세에 다양한 저술과 동물우화집을 통해 널리 퍼지면서 예수님의 수난과 자기희생, 성체성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 역시 이런 상징을 활용해 기도문을 만든 것입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교회 미술에도 사다새가 등장했고, 여러 문장에도 사다새의 상징이 사용됐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전통이 이어져 성체성사에 관해 논의했던 2005년 세계주교시노드 당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주교단에게 사다새가 각인된 반지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펠리컨, 사다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리시기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기억해 봅니다.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성 토마스의 성체찬미가)
이승훈 기자, 가톨릭신문

======================================================================
[성물방 소식]
======================================================================

올여름에는 직원들이 원하는 시기에 휴가를 나누어 다녀온 덕분에 성물방의 문을 닫지 않고 주문 상품을 계속 출고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소개해 드리지 못한 새로운 제품들도 사진 촬영과 상세 내용을 정리하여 꾸준히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이태리에서 주문한 성물들이 새롭게 입고될 예정입니다. 입고되는 대로 꼼꼼히 검수하고 준비하여 좋은 성물들을 차례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성물을 편리하게 만나보실 수 있도록 상품 업데이트와 신속한 출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지난 호는 성물방 메인페이지 하단 "성물방소식지"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상호명:임마누엘 / 대표 송철영 라파엘, 사업자등록번호 : 206-17-24777, 통신판매업번호 : 하남 제0378호
[12902] 경기도 하남시 미사강변한강로 135 미사강변 스카이폴리스 나동 415호
☎ 02-447-7396, 010-3161-4511
Copyright ⓒ 성물방 All Rights Reserved. Since 2004
성물방은 "www.smb.kr"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