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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방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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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3호 -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잘 / 26-9-27
입력일 : 2026.09.28 12:34:12
작성자 : 성물방 File : 26-09-04.jpg 조회 : 60
제1113호 · 연중 제26주일
2026년 9월 27일 일요일 성물방 주간 소식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수없이
“아멘”이라고 대답합니다.

사랑하겠다고 하고,
용서하겠다고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좋은 말과
다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 속에서 실제로 실천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우리의 말보다 작은 행동 하나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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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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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7일 (일) [녹]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제1독서 에제키엘 18,25-28 / 제2독서 필리피 2,1-11 / 복음 마태오 21,28-32

“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

오늘의 제1독서 에제키엘 예언서는 ‘하느님의 정의와 개인의 책임’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 정의와 공정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의인이라도 정의를 버리고 불의를 저지르면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고, 악인이라도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면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타이틀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이 구원될 ‘의인’과 처벌될 ‘악인’을 결정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정의와 공정의 주님께서는 그렇게 심판하십니다.

마태오가 전해주는 오늘 복음은 ‘두 아들의 비유’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에서 두 아들이 말이 아니라 행실로써 심판되는 것이 당연하다면, 세리와 창녀들이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보다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며, 그것이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이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설명하셨습니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오늘의 제2독서 필리피서는 ‘일치와 겸손’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 찬가’라고 알려진 구절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신 예수님의 겸손을 찬미하는 노래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순종의 모범사례로써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배워 알고 있는 주님의 태도를 우리 몸에 익혀 겸손하게 행동하여 서로 일치하라는 뜻으로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배울 때 올바로 배우고, 배웠으면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자기 만족을 위해 호기심을 가지고 이상한 가르침에 현혹되지 말고, 교회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순종하며 배우십시오.

그리고 실천하십시오.

실천하지 못하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니 다시 배우십시오.

잘 모르겠더라도 그래도 아무튼 실천해보고 깨달으십시오.
한상만 토마스 신부 / 103위 한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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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간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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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2026년 9월 28일 월요일 [녹]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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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

루카 9,46-50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오늘 복음의 첫 구절은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로 논쟁이 일어났다는 내용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이 왜 그러한 논쟁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논쟁에 어떻게 개입하셨고 또 어떻게 정리하셨는지를 분명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논쟁에 개입하시는 모습은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의 생각을 아시고”(루카 9,47)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그들 마음속에서 무엇을 보셨을까요?

사실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온전한 믿음이었습니다. 계산하거나 의심하지 않는 단순하고도 순수한 믿음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 가운데 큰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더 예수님께 인정받는지 세속적으로 따질 때, 예수님께서는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 결국 가장 큰 사람이 된다.’는 신앙의 지혜로 그 논쟁을 정리하십니다.

우리도 자기 생각을 걷어 내고, 하느님의 뜻과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여정 안에서 단순하고 순수한 믿음의 자세를 지니며 성장하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


【화요일】 2026년 9월 29일 화요일 [백]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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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1215년)와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에서 천사들의 존재를 신앙 교리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천사에 대한 학자들의 여러 학설에는 유권 해석을 하지 않았다.
다만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외의 다른 천사 이름은 금하고 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 같으랴.’,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사람, 영웅, 힘’, 라파엘은 ‘하느님께서 고쳐 주셨다.’는 뜻이다.

[복음묵상]

요한 1,47-51
<너희는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성경에 그 이름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천사는 오늘 우리가 축일을 지내고 있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천사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다른 천사들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천사들의 존재가 이름으로만 규정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며, 동시에 대천사들의 이름이 성경에 나와 있다는 것은 천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천사와 악마의 존재는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보호하고 계심을 믿고 희망하게 합니다. 인간이 천사의 보호를 받고 싶다면 당연히 천사의 인도에 기꺼이 따라야 할 것입니다. 천사의 보호를 받고자 하면서도 악마가 제시하는 조건들에 귀 기울이거나 관심을 보인다면, 천사의 보호를 스스로 벗어나는 어리석고 안타까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천사는 악마에게서 억지로 우리를 떼어 놓지 않습니다. 악마도 천사에게서 억지로 우리를 떼어 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자유’를 선물받았기에 천사와 악마의 이야기를 듣고 지혜롭게 판단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양심에 따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알고 있는 그대로 판단하고 실천할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롭게 선택하기를 바라시고, 그 선택을 인내로이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을 바라보며 용기 내어 결단할 수 있도록 순간순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선택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


【수요일】 2026년 9월 30일 수요일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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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니모 성인은 347년 무렵 달마티아의 스트리돈(현재 보스니아의 그라호보 근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부터 로마에서 라틴 말과 그리스 말을 공부한 다음 트리어에서 정부 관리로 일하였으나, 수덕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사막에서 오랫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히브리 말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였다.

379년 사제가 되어 382년 다마소 1세 교황의 비서로 일하면서 교황의 지시에 따라 성경을 라틴 말로 옮겼는데, ‘대중 라틴 말 성경’이라고 하는 『불가타』(Vulgata)가 그것이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그는 성경 주해를 비롯하여 많은 저술을 남기고 420년 무렵 베들레헴에서 세상을 떠났다.

암브로시오 성인, 그레고리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함께 서방 교회의 4대 교부로 존경받고 있다. ㅣ

[복음묵상]

루카 9,57-62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먼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오겠다고 하거나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다음에 따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어라]”(루카 9,60).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9,62).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 고민하고 갈등을 겪게 됩니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피할 수 있는지 계산하고, 그러면서 자신이 받을 이익이나 손해 등을 함께 따져 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 자신의 의지와 결단으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가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아쉬움이나 미련과 같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감정들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이야기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결국은 빈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모습처럼, 하고자 하는 것과 하고 있는 것이 다른 데서 비롯되는 것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왕태언 요셉 신부)


【목요일】 2026년 10월 1일 목요일 [백]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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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데레사’로 알려진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873년 프랑스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1888년 열다섯 살에 리지외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결핵을 앓다가 1897년 스물네 살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수도 생활은 짧았지만 그는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고 고행하였으며, 일상의 단순하고 작은 일에 충실하였다.

그는 죄인들의 회개와, 사제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발표된 병상 저서들은 세계 곳곳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이를 감동시켰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그를 시성하고, 1929년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였으며, 1997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복음묵상]

루카 10,1-12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를 것이다.>

여러분은 보통 언제 기도하나요?

『매일 미사』 책과 늘 함께하는 이들이라면, 아마도 이런 물음이 무색할 만큼 성실히, 마음을 다하여 기도를 바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 자신을 돌아보면 아무래도 무엇인가가 부족하거나, 아쉬울 때 더 간절함을 담아 기도를 바치는 것 같습니다. 내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을 나보다 더 크신 분께서 잘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깊고 간절하게 기도하도록 이끌어 주는 듯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욥의 간절함을 봅니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욥 19,23),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19,25-26). 말도 안 되는 갖은 재난을 맞닥뜨린 욥은 비록 처음에는 자신의 생일까지 저주할 만큼 깊은 시련에 빠졌지만(3장 참조), 그럼에도 자신의 간절함을 절절하게 고백하며 하느님의 섭리를 기다립니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기어이 하느님을 뵘으로써 하느님과 대화를 이어 가려는 것이지요.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필요할 때 내가 할 말만 하고 쏙 빠지는 것은 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신 구원 역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온전히 자리 잡고 있을 때 우리는 주님과 참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야 주님께서 고통 속에서도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를 잘 듣고 오늘 복음 속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명을 우리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기꺼이 이어 나갈 수 있겠지요.

우리는 오늘 작고 단순한 일에서도 기쁘게 하느님을 찾으며, 그분의 정원에 핀 작은 꽃으로 살아간 ‘소화 데레사’ 성인을 기념합니다. 성인처럼 우리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하느님을 찾고, 그분 안에 머무르면 좋겠습니다.
(김영송 알베르토 신부)


【금요일】 2026년 10월 2일 금요일 [백] 수호천사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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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는 사람을 선으로 이끌며 악에서 보호하는 천사다.
교회 전승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수호천사를 정하여 주시어 그를 지키며 돕게 하신다.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시편 91[90],11). “저를 모든 불행에서 구해 주신 천사께서는 이 아이들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창세 48,16).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마태 18,10).

수호천사에 관한 성경의 이러한 표현은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복음묵상]

마태오 18,1-5.10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우리가 다른 이들과 원활하게 소통하는 데 필요한 태도 가운데 하나가 ‘경청’입니다. 말 그대로 ‘귀를 기울여서 듣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누군가 경청하는 장면을 상상할 때면 자기보다 아래쪽에 있는 이를 향하여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평소라면 들리지도 않았을 소리, 가까이 다가가야만 들리는 소리를 들으려면 몸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깊게 묵상해 보면 어쩌면 경청은 그동안 크게 중요하지 않게 여긴 것의 중요성을 새로이 깨닫는 소중한 순간을 표현한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경청하기보다는 자신을 들어 높이려 하는 제자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큰사람이 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를 궁금해합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앞에 세우시고 어린이처럼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는 혼자 힘으로는 온전히 살아가기 힘든 존재, 그러기에 언제나 어른의 말을 경청하고 따라야 하는 존재입니다. 바로 그런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라고 하십니다.

이는 곧 겸손으로 이어집니다. 겸손은 아무것도 몰라서 그저 자세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큰 앎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앞에 몸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겸손은 경청과 맞닿아 있습니다.

오늘은 교회가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끌어 주는 존재인 수호천사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수호천사의 보호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니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존중하며, 설령 내가 옳고 유일한 정답을 안다고 하더라도 잠시 말을 멈추고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김영송 알베르토 신부)


【토요일】 2026년 10월 3일 토요일 [녹] 연중 제26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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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묵상]

루카 10,17-24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다음에는 경과를 지켜보고 결과를 정리하는 것이 다음에 더 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일이 마무리되고 나면 해냈다는 사실에만 심취하거나 다음 일은 다른 사람이 하리라고 생각하며 결과 정리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음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발전 없이 그저 해치우기에 급급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찰을 통하여 다음에는 더 낫기를 바라며, 잘하였든 잘하지 못하였든 결과를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얼마 전에 파견한 제자들이(루카 10,1 참조)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른 뒤 돌아와서 결과를 보고합니다. 일흔두 제자는 성과가 매우 좋았는지, 기뻐하며 돌아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힘을 억누르는 권한을 주었다. 이제 아무것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10,18-19)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권한을 나누어 받아 마귀를 쫓은 일 자체가 아니라 주님을 따름으로써 그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도 우리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세례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사실만으로 온전히 하느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소중한 선물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을 통해 정리해 봐야 할 때입니다.
(김영송 알베르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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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함께하는 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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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삶으로 대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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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사 때마다 “아멘”이라고 응답합니다.

“아멘”은 단순히 예식에서 사용하는 대답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미사가 끝난 뒤 우리의 삶에서도 그 “아멘”은 계속되고 있을까요?

가톨릭교회는 신앙을 단순히 어떤 교리를 알고 인정하는 것으로만 가르치지 않습니다.
신앙은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입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우리의 말뿐만 아니라 일상의 삶을 통해 드러나야 합니다.

기도하면서도 이웃을 외면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면서도 가족에게 상처를 주며,
용서를 청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아직 삶 속에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거창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힘들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미워했던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작은 것을 나누는 것,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바로 우리가 일상에서 드리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 주님!” 하고 부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성당 문을 나서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됩니다.

성당에서 드린 우리의 “아멘”을 가정에서, 일터에서,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작은 사랑으로 실천할 때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가 됩니다.

거창한 결심보다 한 가지 작은 실천을 정해 보면 어떨까요?

오늘 내가 만나는 한 사람에게 먼저 친절을 베풀기.
그 작은 행동 하나가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아멘”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입술로 고백하고, 삶으로 완성해 가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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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물방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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