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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천주교 인조가죽이콘 - 성 김대건, 특특대

공식인물화, 전례용, 벽걸이용


W 80cm + H 100cm / AJ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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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 가톨릭 천주교 인조가죽 이콘 - 성김대건, 특대
        • 250,000원
        • W 55cm + H 70cm / AJ125
        • 성인의 공식 인물화






      이콘-성김대건안드레아
      maria-140x140.jpg



      인조가죽
      성 김대건 안드레아 - 특특대

      line-title.png


      최초의 한국 신부이며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金大建 Andrew) 1821~1846년

      이 그림은 문학진 화가의 작품으로 명동성당내에 소장되어 있다.

      처음에는 복자화로 성인의 상징인 후광이 없었으나
      1984년 시성이후 후광이 추가 되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의 젊은 모습으로 믿음을 지키고 증거하며
      또 기꺼이 순교한 성인의 삶을 잘 표현하였다.



      aj128-1.jpg


      W 80cm + H 100cm / 합판, 인조가죽

      인조가죽에 프린팅을 하여 질감이 좋습니다.

      먼지등이 뭍어도 마른 수건등으로 닦아 주시면 됩니다.

      ※ 성 김대건 신부님의 공식 인물화 입니다.


      round line.png


      벽걸이용, 전례용

      point.jpg

      " 사막의 풀밭에도 방울져 흐르고
      언덕들은 기쁨으로 띠 두릅니다. "
      (시편 65, 13)



      aj128-2.jpg

      aj128-3.jpg


      ※ 모니터에 따라 색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으며, 재는 방법에 따라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Andreas)는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김대건의 아명은 재복(再福)이고 이름은 지식(芝植)이라고 하는데, 그의 집안은 열심한 구교 집안이다. 김대건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Pius)와 아버지는 순교로써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다.

      신앙 깊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성장한 김대건은 굳센 기질과 열심한 신덕으로 충실히 생활하던 중, 16세 때인 1836년에 모방 신부에 의해 최양업 토마스와 최방제 프란치스코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가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 프란치스코는 병사하였으므로, 남은 두 신학생만이 훌륭히 학업과 성덕을 닦았으나 나이가 25세에 이르지 못하여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무렵 파리 외방 선교회가 조선 교구를 담당하여 주교와 신부를 조선에 입국시켜 전교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조선이 외국과 수호조약을 맺지 않아 종교자유가 없었음으로 프랑스 루이 필립 왕이 파견한 함대의 세실 제독이 그 계획을 실행하겠다고 나섰다. 김대건은 세실 제독의 통역관이 되어 조선이 들어갈 메스트르 이 신부와 함께 에리곤 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세실 제독이 갑자기 조선 항해를 중지하게 되어 김대건은 혼자 육로로 본국에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변문에 이르러 조선 사절단의 일원인 김 프란치스코를 만나 본국 소식을 자세히 듣게 되었는데, 성직자를 비롯하여 아버지와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국을 서둘러 그해 12월 29일 혼자 의주 변문을 거쳐 입국하였으나 중도에서 본색이 탄로날 위험이 생겨 다시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김대건은 백가점(白家店)과 소팔가자(小八家子)에 머물며 메스트르 신부로부터 신학을 배우고, 1844년 12월 15일 페레올 고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고, 다시 입국을 시도하여 고 주교와 함께 변문으로 왔으나 김 부제 혼자만 1월 15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1845년 4월 주교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하여 상해에 갔다가 그 해 8월 17일 그곳의 김가항(金家港) 성당에서 페레올 고 주교 집전으로 사제품을 받아 조선교회의 첫 사제가 되었다. 이어 8월 24일 상해에서 30리 떨어진 횡당(橫堂) 신학교 성당에서 다블뤼 안 신부의 보좌를 받으며 첫 미사를 집전하였다.

      같은 달 31일 고 주교와 다블뤼 안 신부를 모시고 라파엘호라 명명한 작은 목선을 타고 상해를 출발하여 1845년 10월 12일에 충청도 나바위라는 조그마한 교우촌에 상륙하였다. 김 신부는 선교활동에 힘쓰는 한편 만주에서 기다리는 메스트르 이 신부를 입국시키려고 애썼으나, 의주 방면의 경비가 엄해서 고 주교는 바닷길을 알아보라고 지시함으로, 백령도 부근으로 갔다가 순위도에서 1846년 6월 5일 밤에 체포되었다.

      체포된 김 신부가 황해 감사 김정집의 심문에서 자신은 조선에서 출생하여 마카오에서 공부했음을 토로하자 황해도 감사는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리하여 조정에서는 이 사건의 중대성을 인식하여 중신회의를 열고 서울 포청으로 압송케 하였다. 일부 대신들은 김 신부의 박학한 지식과 외국어 실력에 탄복하여 배교시켜 나라의 일꾼으로 쓰자고 하는 의견도 있고 해서 배교를 강요했으나, 김 신부는 도리어 관리들을 교화시키려고 하자 사학의 괴수라는 죄목을 붙여 사형을 선고하였다.

      김 신부는 사제생활 1년 1개월만인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김 신부의 나이는 26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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